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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남산의 부장들 줄거리, 실화 내용, 총평

by mytstory2544 2025. 4. 22.

남산의 부장들 영화 포스터

줄거리

 1979년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은 각하(이성민) 곁에서 오랫동안 국가와 각하를 위해 일해 왔습니다. 김규평에게 갑작스럽게 미국으로의 임무가 주어집니다.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미국으로 망명한 후 회고록을 출간하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온 것입니다. 박용각의 회고록에는 각하의 비자금과 같은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어 김규평은 이를 막기 위해 미국으로 향합니다.

 

 미국에서 박용각을 만난 김규평은 그의 회고록 출판을 저지하려 하지만, 오히려 박용각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각하의 진짜 2인자는 자신들이 아니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라는 것입니다. 김규평은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후 경호실장 곽상천이 점점 더 권력을 키워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김규평은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느끼며 각하의 신임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갑니다. 각하는 김규평에게 여전히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서도 곽상천의 의견을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김규평의 배신에 대한 의심과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결정적으로 박용각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김규평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박용각의 죽음이 각하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편, 부산에서는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각하는 강경 진압을 지시합니다. 김규평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와 유신 체제의 폭압적인 모습을 지켜보며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결국 김규평은 부하직원들과 함께 각하와 곽상천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19791026,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열린 만찬 자리에서 김규평은 권총을 꺼내 각하와 곽상천을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렇게 18년간 이어진 박정희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영화는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김규평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실화 내용

 영화 '남산의 부장들'19791026일에 발생한 실제 사건인 '10.26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살해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영화 속 김규평은 실존 인물 김재규를, 각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곽상천은 차지철 경호실장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김재규는 1924년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태어나 안동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거쳐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박정희와 같은 육군사관학교 2기생으로, 오랫동안 박정희의 측근으로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육군 제6사단장, 보안사령관, 3군단장 등을 역임했고, 1973년 중앙정보부 차장에 임명된 후 197612월부터 중앙정보부장을 맡았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김재규는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1971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경호실장 차지철의 권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는 김재규와의 권력 암투로 이어졌습니다. 차지철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점차 김재규를 밀어내고 박정희의 2인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김형욱(영화 속 박용각) 전 중앙정보부장의 망명과 회고록 출판 시도 역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김형욱은 1969년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난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했고, 197910월 파리에서 실종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건은 김재규가 박정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197910월 당시 한국 사회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 상태에 있었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 선포 이후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강화되었고, 이에 대한 민주화 요구와 저항이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1979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부마항쟁)는 정권에 큰 위협이 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을 두고 김재규와 차지철 사이에 깊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1026일 당일, 김재규는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이 참석한 저녁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만찬 도중 김재규는 다른 방으로 차지철을 불러내 총으로 사살한 후,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18년간 계속된 박정희 정권은 종말을 맞았습니다.

 

 사건 직후 김재규는 "유신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주장했으나, 일각에서는 단순한 권력 다툼의 결과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김재규는 체포된 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 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980524일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총평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10.26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한 팩션 영화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앞서 '내부자들''마약왕'에서 보여준 권력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는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김규평(실제 김재규)은 권력의 중심에서 점차 소외되어 가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 냅니다.. 그의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에서 각하에 대한 충성심과 배신감, 권력에 대한 야망과 좌절, 그리고 마침내 결행하게 되는 암살에 대한 결연함과 두려움 등 다층적인 감정이 느껴집니다. 이성민은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각하' 역할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권위, 그리고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를 균형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담배를 태우며 떨리는 손과 같은 디테일한 연기는 실존 인물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철저한 고증과 2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뛰어난 미술, 의상, 음악 등 기술적 완성도에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의 서울,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배경을 실감나게 재현해 내어 관객들을 그 시대로 완벽하게 이끌어갑니다. 특히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우민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한 인물을 영웅화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복잡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각자의 신념과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역사를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충성과 배신의 경계,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립 등 현재에도 유효한 보편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가 개봉 당시 475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배경이 되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작품상 수상 등 비평적으로도 호평을 받은 이유입니다.

 

 원작자 김충식이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는" 백미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한 장면을 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우민호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