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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남영동1985 줄거리, 실화 내용, 총평

by mytstory2544 2025. 4. 19.

남영동1985 영화 포스터

줄거리

 19859,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종태(박원상)는 가족과 목욕탕에서 돌아오던 중 경찰에 연행됩니다. 눈가리개를 채운 채 끌려간 곳은 공포의 상징 남영동 대공분실. 그곳에서 그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22일 간의 고문에 처해집니다. 박전무(명계남)를 중심으로 한 수사관들은 김종태의 신체와 정신을 파괴하기 위해 물고문, 전기고문, 칠성판 고문 등을 가합니다.

 

 첫날부터 시작된 "물공사"는 샤워 호스로 콧구멍에 물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김종태는 "민주화 운동은 정당하다"며 버텨냅니다. 수사관들은 그의 항변을 억압하기 위해 "너의 운동이 민주화를 위한 거라면, 왜 북한이 지원했나?"라며 압박합니다. 이 과정에서 김종태의 왼쪽 귀는 고막이 터지는 부상을 입고, 오른쪽 발가락은 망치로 내리 찍혀 골절됩니다.

 

 결국 전문 고문 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이 투입되며 상황은 악화됩니다. 이두한은 "죽지 않는 선에서 최대 고통을 주는 기술"로 김종태의 손가락을 망치로 찍고, 전기 충격기를 성기에 직접 겁니다. "이게 진짜 민주주의냐?"는 김종태의 절규에 이두한은 "여긴 법 밖의 공간이다"라며 냉소합니다. 고문실 밖에서는 권력의 논리가 작동합니다. 대공분실 간부들은 "간첩 사건을 만들어야 진급한다"는 목적으로 허위 자백서를 강요합니다. 김종태가 기절할 때마다 주사액을 투여해 깨우는 잔인함은 국가 시스템이 허용한 폭력의 극단을 보여줍니다.

 

 22일 차, 김종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허위 진술서에 서명합니다. 그러나 풀려난 후 재판장에서 그는 모든 진술을 부인하며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외칩니다. 영화는 2012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실제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오버랩시키며 끝을 맺습니다. 김종태의 투쟁이 개인의 생존을 넘어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마무리입니다.

 

실화 내용

 영화의 실제 모델인 김근태(1947-2011)1985년 9월4일부터 25일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당시 보안사는 그를 "민청학련 사건 주동자"로 지목하며 간첩 혐의를 씌웠습니다. 김근태의 수기 남영동(1989)에 따르면, 그는 쇠망치로 발가락을 찍히고 전기고문을 당해 생식기에 영구적 손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물공사" 고문은 콧구멍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물을 주입해 폐부종을 유발했으며, 이는 영화에서 생생히 재현되었습니다.

 

 실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영화 속 이두한의 모델입니다. 그는 1970-80년대 130여 명에게 고문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2년 영화 개봉 당시 "물고문 방식이 과장됐다"며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남영동 고문 피해자 7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011년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고문 사실을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있다"며 국가의 책임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영화 제작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김근태가 2011년 별세한 지 1년 후 개봉되며 추모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역사적 기록과 다른 점은 김근태의 아들 김동현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시 7세였던 아들은 아버지의 실종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심리적 치료를 받았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김종태가 고문실을 떠나며 이두한에게 "넌 죽을 때까지 이 방에 갇힐 거다"라고 경고하는 장면은 실제 김근태의 용서 없는 투쟁 의지를 각색한 부분입니다.

 

 영화 속 윤석남이라는 가상 인물(문성근 분)은 당시 권력 구조의 책임자를 상징합니다. 윤사장의 대사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군사정권의 논리를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실제 1980년대 보안사 간부들은 "고문은 국가 방위를 위한 필수 절차"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으며, 이는 2012년에도 일부 극우 단체에서 영화를 "반국가적 작품"이라 비난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총평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2012)에 이어 또 하나의 사회 고발 영화로 한국 현대사의 아픈 지점을 건드립니다. 박원상은 20kg 감량과 실제 고문 동작 모방 훈련을 통해 김종태의 고통을 육체적으로 구현했습니다. 특히 전기고문 장면에서의 경련 연기는 의학적 자료를 참고해 초현실적 고통을 재현했습니다. "살려주세요"라는 탄식이 점차 "민주주의는 죽지 않는다"는 외침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연기력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경영의 이두한 연기는 악역이면서도 "나는 직업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대사로 가해자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묘사했습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기계적인 고문 동작은 "폭력의 시스템화"를 상징합니다. 한편, 명계남이 연기한 박전무는 "너희들이 국가를 위협한다"는 망언으로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며, 군부 독재의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촬영 기법에서 주목할 점은 클로즈업의 과감한 사용입니다. 김종태의 얼굴에 계속되는 물줄기, 피로 얼룩진 손톱, 휘어진 발가락의 확대 촬영은 관객으로 하여금 고문의 생생함을 체감하게 합니다. 고문실 세트는 실제 남영동 구조를 참고해 제작되었으며, 시멘트 바닥의 냉기와 적막함을 재현하기 위해 공간 음향 기술을 특수 처리했습니다.

 

 사회적 영향 측면에서 이 영화는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재점화했습니다. 2012년 개봉 당시 보수 단체의 상영 방해 시도가 있었으나, 역으로 청년층에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역설적 효과를 낳았습니다. 영화 끝부분의 실제 피해자 인터뷰는 관객에게 "과거사 청산이 미완의 과제"임을 각인시켰습니다.

 

 예술적 완성도와 현실적 고증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점이 높이 평가됩니다. 다만 일부 장면에서 고문 도구의 과장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이근안은 AA 건전지를 사용한 전기고문을 주장했으나, 영화에서는 자동차 배터리 크기의 장비가 등장합니다. 이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각색으로 해석됩니다.

 

 역사적 교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점에서 이 영화의 가치는 큽니다. 19876월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남영동의 어두운 방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키며, "민주주의는 피로 쓰인 역사"라는 메시지를 관객의 가슴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