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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실미도 줄거리, 실화 내용, 총평

by mytstory2544 2025. 4. 14.

실미도 영화 포스터

줄거리

 영화 '실미도'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박정희 정부가 비밀리에 창설한 '684 부대'(일명 주석궁 폭파부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강인찬(설경구)이 살인미수로 사형을 언도받고 집행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인천의 외딴 부둣가로 끌려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강인찬은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연좌제 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범죄의 길로 빠지게 된 인물입니다. 그는 다른 사형수, 무기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실미도라는 무인도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이들은 위장 공군 소령 박중사(안성기)와 조중사(허준호)의 지휘 아래 '684 부대'의 일원이 되어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됩니다.

 

 31명의 사형수와 무기수로 구성된 이 부대의 목표는 북한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하는 것이었습니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 아래 이들은 비인간적인 지옥훈련을 견뎌냅니다. 훈련 과정에서 몇몇 대원들은 사망하거나 도주를 시도하다 사살됩니다. 강인찬은 점차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부대의 핵심 멤버로 성장합니다. 2년여의 훈련 끝에 부대원들은 최종 평가를 통과하고 북한 침투 작전을 앞두게 됩니다. 그러나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시작되면서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정부는 갑자기 684 부대의 북한 침투 작전을 무기한 연기합니다. 대원들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훈련을 계속합니다.

 

 그러던 중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임무 완수 후에 조용히 제거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분노한 부대원들은 박중사와 다른 간부들을 제압하고 실미도를 탈출합니다. 그들은 인천을 거쳐 서울로 향하면서, 청와대로 가서 자신들의 처우 개선과 생존권을 요구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군과 경찰의 대대적인 저지에 막힌 부대원들은 결국 버스 안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강인찬과 다른 생존자들은 수류탄으로 자폭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영화는 이 사건이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으며, 1998년에야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마무리됩니다.

 

실화 내용

 영화 '실미도'는 실제 역사 속에 묻혀있던 '684 부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968121, 북한의 124군 소속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김신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에 분노한 박정희 정부는 같은 해 4,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 차원에서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한 특수부대를 비밀리에 창설했습니다. 공군 소속으로 창설된 684 부대는 실제로 사형수, 무기수, 형기가 긴 죄수들 중에서 선발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임무 수행 후 사면과 새로운, 인간다운 삶이 약속되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그들은 인천 앞바다의 무인도인 실미도에서 2년 반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시작되면서 684 부대의 북한 침투 계획은 중단되었습니다. 실제로 부대원들은 훈련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실망과 분노를 느꼈고, 정부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와 달리, 실제 사건에서 부대원들이 자신들이 '제거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그들이 느낀 절망감과 배신감은 실제였습니다. 1971823, 684 부대원들은 실미도를 탈출하여 인천으로 건너갔습니다. 영화에서처럼 그들은 군과 경찰의 저지에 막혔고, 결국 서울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20명이 사망하고 4명이 생포되었으며, 나머지는 도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공식 역사에서 지워졌고, 1998년에야 정부에 의해 공식 인정되었습니다. 2001684 부대원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고, 2002년에는 유족들에게 배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영화와 실제 사건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강인찬이라는 가상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실제 부대에는 이런 인물이 없었습니다. 또한 영화에서는 부대원 모두가 죽은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생존자들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또한 박중사(안성기 역)와 조중사(허준호 역)라는 가상의 간부 캐릭터를 통해 부대원들과 군 당국 간의 갈등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실제 684 부대에는 김방일 소대장과 박상근 중사 등이 있었으며, 이들의 일부 행적이 영화 속 캐릭터들에 반영되었습니다.

 

 월간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 684 부대의 임무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오소리 작전'이라고 불렸던 이 계획은 북한 지도부 암살뿐만 아니라 군사시설 파괴, 주요 도로와 교량 폭파 등을 포함했습니다. 부대원들은 북한 작전 후 중국 국경을 넘어 대만으로 탈출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총평

 영화 '실미도'는 한국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입니다. 200312월 개봉하여 한국 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상업적 성공과 함께 우리 사회에 숨겨진 역사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강우석 감독의 연출과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등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극적 긴장감과 감동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실미도'의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공식 역사에서 지워진 684 부대의 비극적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렸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국가 폭력과 인권 유린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국가가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이용하고 버리는 비인간적 행태에 대한 비판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설경구는 강인찬 역할을 통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는 처음에는 거칠고 반항적인 사형수에서 점차 책임감 있는 부대원으로 성장하는 인물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표현합니다. 안성기와 허준호 역시 복잡한 감정을 지닌 군 간부 역할을 통해 영화의 깊이를 더합니다. 특히 안성기가 연기한 박중사 캐릭터는 부대원들을 훈련시키면서도 그들의 운명에 동정심을 느끼는 복잡한 인물로 그려져 단순한 선악 구도를 피합니다.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서도 '실미도'는 당시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8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실미도의 고립된 환경과 혹독한 훈련 장면, 그리고 마지막 버스 액션 시퀀스 등을 실감 나게 구현했습니다. 김성복 촬영감독의 카메라 워크는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의 긴박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러나 '실미도'는 몇 가지 비판적 평가도 받았습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신파적인 요소에 의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씨네21의 평론가 김소영은 "현실효과 창출에 영화는 8080억 원을 사용하는 소란을 피웠다"고 언급하며, 영화의 스펙터클이 역사적 맥락과 비판적 성찰을 압도한다고 비평했습니다. 또한 한겨레21의 기사에서는 "감정의 과잉""역사의 빈곤"이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이는 영화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개인의 비극과 감정적 요소에 치중했다는 비판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684 부대사건이 발생한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상황, 남북관계, 그리고 냉전 구도 등에 대한 심층적 분석보다는 부대원들의 개인적 이야기와의 전우애에 더 집중합니다.

 

 영화의 구조적 측면에서도 일부 약점이 지적됩니다. 이야기 전개가 다소 도식적이고, 인물들의 성격 변화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초반부 부대원들 간의 갈등에서 전우애로 전환되는 과정이 다소 빠르게 처리되어 설득력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미도'는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대중에게 알리고, 국가 폭력과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한국 영화의 상업적 잠재력을 입증하며 이후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실미도'는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 인간의 존엄성,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 보편적 주제를 다루는 강렬한 작품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부대원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 인권과 존엄성에 관한 현재진행형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는 '실미도'가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논의되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