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추격자’는 서울을 배경으로 전직 형사이자 현재는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엄중호(김윤석 분)가 연이어 실종되는 여성들을 쫓으며 벌어지는 숨막히는 추격전을 그린 범죄 스릴러입니다. 중호는 최근 자신이 관리하던 여성들이 잇달아 사라지자 돈을 받고 도망간 것으로 여기며 분노합니다. 어느 날, 감기몸살로 쉬고 있던 미진(서영희 분)을 억지로 호출해 예약 손님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미진을 부른 손님의 전화번호가 이전에 실종된 여성들의 마지막 통화 번호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중호는 불길한 예감을 갖게 됩니다. 그는 미진에게 손님의 집에 도착하면 주소를 문자로 보내라고 지시하지만, 미진은 신호가 잡히지 않아 실패합니다.
미진은 손님 지영민(하정우 분)의 집에 들어가고, 수상한 낌새를 느끼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감금당한 채 목숨을 위협받고, 영민은 노부부까지 살해하며 잔혹한 본성을 드러냅니다. 한편, 우연한 교통사고로 중호와 영민이 마주치고, 피 묻은 옷을 본 중호는 그가 범인임을 직감해 추격전을 벌입니다. 결국 중호는 영민을 붙잡아 경찰서로 데려가지만, 경찰은 중호를 폭행범으로 몰고, 영민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그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영민은 “안 팔았어요. 그냥 죽였어요”라며 12명을 살해했다고 침착하게 고백하지만, 경찰은 실적 쌓기에만 급급해 미진의 생사에는 무관심합니다.
중호는 미진의 딸 은지를 돌보며 미진을 찾아 나서고, 경찰은 시신을 찾기 위해 분주하지만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합니다. 그 사이 영민은 석방되고, 미진은 가까스로 감금에서 탈출해 인근 슈퍼로 도망칩니다. 그러나 영민이 슈퍼에 들이닥치고, 상황을 모르는 슈퍼 주인 아주머니가 영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미진과 아주머니는 잔혹하게 살해당합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중호는 미진의 죽음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분노한 중호는 영민의 집을 찾아가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수조에 담긴 미진의 시신을 보고 격분해 골프채와 망치로 영민을 공격합니다. 경찰이 들이닥쳐 최악의 사태를 막고 영민은 결국 체포됩니다. 영화는 미진의 딸 은지를 바라보는 중호의 슬픈 표정과 서울의 야경을 비추며 끝을 맺습니다. ‘추격자’는 한 남자의 집요한 추적과 연쇄살인범의 냉혹함, 그리고 무능한 공권력의 현실을 통해 깊은 충격과 여운을 남깁니다.
실화 내용
‘추격자’는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실제 유영철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 일대에서 성매매 여성, 부유층 노인, 여성 등 20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범으로, 범행 수법의 잔혹성과 대담함, 그리고 경찰의 수사 실패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영화는 유영철 사건의 주요 모티브와 구조를 차용하되, 등장인물과 세부 전개는 극적 상상력을 더해 각색했습니다.
영화 속 연쇄살인범 지영민은 실제 유영철처럼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며, 피해자들은 대부분 연락두절된 채 실종 처리됩니다. 경찰은 실종 신고에 소극적이었고, 피해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였기에 수사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실제 유영철 사건에서도 경찰은 범인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범행 패턴 분석, 시신 유기 장소 수색 등에서 반복적으로 허점을 드러냈고, 그 결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해, 경찰의 무능과 무관심, 그리고 공권력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합니다.
실제 유영철은 체포 후 20여 건의 살인을 자백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범인을 놓칠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영화 속 지영민이 경찰서에서 자백하고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장면, 피해자가 가까스로 탈출해 도움을 요청하지만 끝내 구조받지 못하는 장면 등은 실제 사건의 비극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또한 영화의 주인공 엄중호는 전직 형사 출신의 보도방 업주로, 실제 유영철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주로 성매매 업소 종사자였던 점을 반영한 인물입니다. 다만 영화는 실제 사건의 잔혹함과 사회적 맥락을 각색해, 스릴러적 긴장감과 인간적 고뇌를 더했습니다.
‘추격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실제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려, 그리고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일부 설정과 결말을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와 현실 고발의 힘은 실제 사건 못지않게 강렬하며, 연쇄살인과 공권력의 무능,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총평
‘추격자’는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으로, 한국 범죄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영화는 단순한 추격전이나 범죄극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의 어두운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엄중호는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은 인물이지만, 점차 인간적 죄책감과 분노, 그리고 정의감에 휩싸이며 관객의 공감을 얻습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은 냉혹하고 무표정한 연쇄살인마로, 그의 일상적이고 무감각한 태도는 오히려 극도의 공포와 불쾌감을 자아냅니다. 두 배우의 강렬한 연기와, 숨막히는 추격전,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는 영화를 한국 스릴러의 대표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추격자’는 범죄와 정의,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 경찰과 범인, 그리고 추격자와 사냥감의 관계를 끊임없이 전복시키며, 관객을 불안과 긴장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특히 경찰의 무능과 시스템의 허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 등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영화는 피해자 구출에 실패하는 결말을 통해, 단순한 권선징악의 서사에서 벗어나 현실의 냉혹함과 비극을 강조합니다.
연출 면에서는 빠른 전개, 리얼리즘에 기반한 촬영, 그리고 서울의 어두운 뒷골목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극적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영화는 개봉 당시 국내외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은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추격자’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미학과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완성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