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이어지는 1987년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이야기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여진구)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은 이 사건을 '쇼크사'로 위장하고 은폐하려 하지만, 검찰의 최민석 검사(하정우)가 부검과정에서 고문 흔적을 발견하면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박처장은 사건을 조작하려 하지만, 최검사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심합니다. 한편, 천주교 성직자들과 한양대학교 외국어학과 학생 연희(김태리)도 각자의 위치에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건은 신문사로 확대되고, 한겨레신문사 이한열 기자(이희준)가 '물고문' 진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며 파문이 일어납니다. 당국은 이에 대응해 '고문치사는 맞지만 물고문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경찰 조사관 두 명만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합니다. 연희의 삼촌인 한국방송 PD 윤상현(유해진)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진실을 알릴지 고민합니다. 그러던 중 천주교 신부 김정남(박희순)을 통해 특종 정보가 나옵니다. 물고문은 사실이었고, 경찰은 증거인멸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발족식이 진행됩니다.
연희와 그녀의 동료들도 시위에 참여하고, 6월 9일 연세대학교 앞 시위에서 이한열(강동원)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집니다. 이한열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굴복하여 6.29 선언이 발표됩니다. 영화는 헌법 개정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는 민주화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실화 내용
'1987'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영화의 핵심 사건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실제로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이었던 박종철은 민주화운동 관련 수배자의 행방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처음에 이 사건을 '조사 도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은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고문과 전기고문이 자행되었고, 이러한 진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영화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최민석 검사 캐릭터는 실제 인물인 천정환 검사를 모델로 했습니다. 천정환 검사는 부검 과정에서 박종철의 시신에서 고문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공개했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물고문' 은폐와 추가 진상규명 과정도 실제 사건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명의 경찰만이 처벌받았지만,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발표를 통해 추가 가담자가 있었고 물고문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영화에서 박희순이 연기한 김정남 신부 캐릭터를 통해 묘사되었습니다.
1987년 6월 9일에는 연세대학교 앞 시위에서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한 달 후인 7월 5일에 사망했습니다. 영화에서 강동원이 짧지만 인상적으로 연기한 이 장면은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이한열의 죽음은 민주화 항쟁에 더 큰 불을 지폈고, 결국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일부는 실명이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와 같은 일부 캐릭터는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을 대표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또한 유해진이 연기한 윤상현 PD도 당시 언론인들의 고민과 역할을 표현하기 위한 캐릭터로 창작되었습니다.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화 운동 중 하나로, 이 항쟁에는 전국적으로 약 4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영화 '1987'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총평
영화 '1987'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다루면서도 역사적 사실성과 영화적 재미를 균형 있게 갖춘 수작입니다. 장준환 감독은 복잡한 정치적 사건들을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효과적으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당시의 시대상황과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주인공이 딱히 없는 군상극 형식을 취하면서도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전체 서사를 탄탄하게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장은 당시 권력의 횡포와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그의 존재감은 영화 전체에 음산한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반면 하정우의 최민석 검사, 유해진의 윤상현 PD, 김태리의 연희 등 다양한 캐릭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들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빼어납니다. 김윤석은 냉혈한 같은 반인권적 행동과 인간적 고뇌가 교차하는 복잡한 악역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고, 하정우는 체제 내에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검사의 내면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 캐릭터는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용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영화의 기술적 측면도 뛰어납니다. 고병원 촬영감독의 카메라 워크는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도 각 장면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조영욱 음악감독의 음악은 시대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반영합니다. 특히 시위 장면이나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는 장면 등은 실제 역사적 사진과 매우 유사하게 재현되어 사실감을 더합니다. '1987'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교조적이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을 피하고, 인물들의 삶과 선택을 통해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는 특정 정치적 입장을 직접적으로 표명하기보다는, 진실과 정의의 가치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적 소재를 다룬 영화가 빠지기 쉬운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나 감정 조작의 함정을 피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은 영화가 민주화 운동의 복잡한 사회적 배경과 다양한 참여 주체들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노동자 계층이나 재야 운동권의 역할, 1980년대 초부터 이어져 온 민주화 운동의 맥락 등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진 점은 한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의 결말이 다소 낙관적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6.29 선언 이후에도 민주화를 위한 긴 여정이 계속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암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화 '1987'은 개봉 당시(2017년 12월) 한국 사회가 경험한 촛불 혁명과 정권 교체의 맥락 속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과거의 민주화 운동과 현재의 정치적 변화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민주주의가 어떻게 획득되고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결론적으로, '1987'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을 다루며 작품성과 대중성, 그리고 역사적 메시지를 균형 있게 담아낸 성공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는 민주화를 위해 싸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보여준 용기와 연대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진실과 정의의 가치가 어떤 상황에서도 중요하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들에게 현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을 일깨웁니다.